태국 시밀란 아일랜드의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움직이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투명한 물빛과 멀리 보이는 섬, 수면 위에 떠 있는 배까지 평소 연습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허리 정도 깊이의 바다로 천천히 들어가 풍경에 반응하며 즉흥적으로 팔을 움직였습니다. 특별히 정해둔 안무는 없었지만, 발레를 하며 오랫동안 몸에 익힌 포르드브라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물속에서의 포르드브라는 육지에서 했던 것과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 밖에 있는 팔은 자유롭고 부드러웠지만 물속에 잠긴 다리는 무겁고 느렸습니다. 부력은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고, 계속 밀려오는 파도는 중심을 흔들었습니다. 시밀란 아일랜드의 바다에서 나는 완성된 동작의 모양보다 물과 몸이 만..
커다란 탈을 뒤집어쓰고 무대에 올랐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명이 켜지는 순간 탈 안쪽 플라스틱에 김이 서려눈앞이 완전히 하얘졌거든요. 이 작품은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몸에서 시작해 안으로 응축되고, 마침내 거대한 날개를 펼치는 존재의 세 단계 성장을 발레로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올랐던 무대 중 가장 낯설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미완성의 몸 —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잘 보였습니다발레를 오래 하면 무의식적으로 몸을 곧게 세우고, 동작의 선을 정돈하려는 습관이 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의 첫 번째 단계는 정반대를 요구했습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탈을 뒤집어쓴 채,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이 움직이는 어린 존재를 표현해야 했거..
솔직히 두루미 배역을 처음 받았을 때는 당황했습니다. 같은 무대에 서는 공작은 화려한 의상에 빠른 회전까지, 등장 순간부터 객석이 술렁이는 역할이었으니까요. 반면 제가 맡은 두루미는 장식도 없고, 강렬한 테크닉을 쏟아낼 장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제 몸으로 만들어낸 선(線) 하나였습니다. 이솝 우화 《공작과 두루미》를 창작발레로 옮기는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이솝 우화가 발레 무대에 올려졌을 때《공작과 두루미》는 출처: MIT Classics — Aesop's Fables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솝 우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는 단순합니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이 단조로운 빛깔의 두루미를 향해 자신의 외형을 자랑하고, 두루미..
솔직히 말하면, 사울왕 역할을 맡았다는 통보를 받은 날 밤에 잠을 잘 못 잤습니다. 기쁘기보다 무거웠습니다. 《다윗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성경 속 이야기였는데, 막상 그 안에서 가장 어두운 감정을 가진 인물을 몸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함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연습이 시작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팔을 쓴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사울왕이라는 인물, 단순한 악역이 아니었습니다《다윗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경 원문을 다시 읽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상을 펼쳐 사울과 다윗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처음부터 따라갔습니다.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처음부터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에서 23절을 보면, 사울..
백조의 호수 발레 동작 발레에서 가장 어려운 동작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32회 연속 회전인 푸에테나 높은 점프를 떠올리십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춤을 추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백조의 호수》를 오랫동안 연습하면서, 오히려 팔 하나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그 어떤 점프보다 오래 걸린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의 대표 동작들을 직접 짚어보겠습니다. 백조의 우아함 — 아라베스크, 포르 드 브라, 데벨로페《백조의 호수》를 처음 보신 분들은 아마 이런 질문을 품게 되실 겁니다. "저 무용수는 왜 저렇게 팔만 움직이는데 저게 더 예뻐 보이지?" 저도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직접 배우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 알았습니다. 백조 오데트를 상징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