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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공작과 두루미》 공연 당시 직접 촬영 및 개인 소장 사진

 

 

솔직히 두루미 배역을 처음 받았을 때는 당황했습니다. 같은 무대에 서는 공작은 화려한 의상에 빠른 회전까지, 등장 순간부터 객석이 술렁이는 역할이었으니까요. 반면 제가 맡은 두루미는 장식도 없고, 강렬한 테크닉을 쏟아낼 장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제 몸으로 만들어낸 선(線) 하나였습니다. 이솝 우화 《공작과 두루미》를 창작발레로 옮기는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이솝 우화가 발레 무대에 올려졌을 때

《공작과 두루미》는 출처: MIT Classics — Aesop's Fables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솝 우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는 단순합니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이 단조로운 빛깔의 두루미를 향해 자신의 외형을 자랑하고, 두루미는 "저는 깃털이 소박할지 몰라도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짧지만 '보이는 아름다움'과 '실제로 쓸 수 있는 능력' 사이의 긴장을 날카롭게 찌르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화를 발레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은 《백조의 호수》처럼 정해진 안무가 전승되는 고전발레가 아니라, 안무가가 캐릭터의 성격에서 출발해 움직임을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창작발레의 형태입니다. 창작발레란 기존 레퍼토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제와 서사를 바탕으로 안무 자체를 새로 구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작과 두루미라는 두 캐릭터를 어떤 움직임으로 번역하느냐가 이 작품의 전부였습니다.

제가 직접 리허설을 거치면서 느낀 것은, 두 캐릭터가 움직임으로 대비시키기에 거의 이상적인 조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공작은 화려한 의상과 강렬한 색채, 빠른 회전(턴)으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도록 구성됐습니다. 반면 두루미는 포르 드 브라(port de bras)를 중심으로 움직임을 설계했습니다. 포르 드 브라란 팔의 움직임과 그 흐름 전체를 가리키는 발레 용어로, 한 번의 팔 동작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섬세하게 다루는 기술입니다. 공작이 빠르고 강렬하게 눈을 사로잡는다면, 두루미는 느리고 길게 이어지는 팔의 선 하나로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 공작: 화려한 의상, 강렬한 색채, 빠른 회전과 테크닉 중심
  • 두루미: 소박한 의상, 포르 드 브라와 느린 아다지오 중심
  • 대사 없이 움직임만으로 두 캐릭터의 성격 차이를 전달하는 구조
요약: 이솝 우화의 핵심 대비를 창작발레는 '빠른 화려함 vs 느린 선의 깊이'라는 움직임의 언어로 번역한다.

 

느린 아다지오가 더 냉정한 이유

두루미를 연습하면서 가장 먼저 깨진 착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느리게 움직이는 게 빠른 테크닉보다 쉽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두루미의 움직임 핵심은 아다지오(adagio)입니다. 아다지오란 비교적 느린 음악 위에서 균형과 팔다리의 선, 동작과 동작 사이의 연결을 보여주는 발레 파트를 말합니다. 빠른 회전이나 점프는 순간에 지나가지만, 아다지오는 무용수의 상태가 몇 초씩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됩니다.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상체와 팔을 길게 펼치는 동안, 미세한 흔들림 하나도 숨길 곳이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심리적으로도 상당히 다른 압박이었습니다. 빠른 동작은 순간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작은 실수가 묻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느린 아다지오는 무용수의 부족함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팔에 호흡이 들어 있지 않으면 동작이 텅 비어 보이고, 중심이 0.5센티미터만 흔들려도 무대 위에서 그 흔들림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저는 팔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 동작이 끝난 자리에 잔상이 남는 것처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동작을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팔이 지나간 공간 자체가 관객의 눈에 남도록 흐름을 충분히 길게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포르 드 브라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발레 교육학 연구에서도 포르 드 브라의 질적 완성도가 전체 퍼포먼스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은 여러 무용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강조되는 부분입니다(출처: Royal Academy of Dance).

"절제된 춤이 화려한 춤보다 쉽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 경험으로는 오히려 절제된 움직임이 무용수에게 더 냉정합니다. 숨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루미라는 배역이 저에게 어려웠던 이유가 정확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요약: 느린 아다지오와 포르 드 브라는 무용수의 중심과 호흡을 날것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화려한 테크닉보다 오히려 더 냉정한 기준을 요구한다.

 

사진 출처 : 《공작과 두루미》 공연 당시 직접 촬영 및 개인 소장 사진

그랑 알레그로, 두루미가 날아오른 순간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면은 후반부의 그랑 알레그로(grand allegro)였습니다. 그랑 알레그로란 넓은 무대 공간을 대각선으로 이동하면서 큰 도약과 점프를 연속으로 보여주는 발레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흔히 클래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트로, 공간 전체를 몸으로 채우는 기술입니다.

작품의 구성은 이렇게 설계됐습니다. 앞부분에서 두루미는 절제된 포르 드 브라와 아다지오로 조용하게 무대 한쪽을 채웁니다. 공작이 화려한 깃털을 펼치고 시선을 독점하는 동안, 두루미는 그 옆에서 긴 팔의 선과 흔들리지 않는 중심만으로 존재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반부로 넘어가는 순간, 두루미의 움직임이 돌변합니다. 조용하게 서 있던 새가 갑자기 넓은 무대를 가로지르며 높이 도약합니다.

그 장면을 처음 제대로 연습했을 때 이상할 정도로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바닥을 강하게 밀어내고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순간, 우화가 말하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문장이 제 몸 안에서 실제 감각으로 이해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점프 하나로 몸의 언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작품의 구성 자체가 영리합니다. 절제된 두루미가 먼저 충분히 쌓인 뒤에야 그랑 알레그로가 살아납니다. 앞에서 조용한 선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후반의 도약은 단순한 점프로 끝났을 것입니다. 공작의 화려함과 대비됐기 때문에, 두루미가 날아오르는 순간이 비로소 '자유'처럼 보였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저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반드시 같은 개념이 아님을 다시 정리하게 됐습니다. 공작의 깃털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으로 다른 존재의 가치를 재단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발레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점프와 빠른 회전이 강력한 무기인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좋은 춤의 기준이 된다면 절반의 아름다움밖에는 보지 못하는 셈입니다.

요약: 그랑 알레그로는 앞서 쌓아온 절제된 선이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운 도약'으로 읽힌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같은 말이 아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작과 두루미》는 실제로 공연되는 발레 작품인가요?

A. 《백조의 호수》처럼 정해진 안무가 전승되는 고전발레 레퍼토리는 아닙니다. 이솝 우화를 바탕으로 안무가가 새롭게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창작발레의 형태로 무대에 올릴 수 있으며, 안무가에 따라 해석과 구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Q. 포르 드 브라가 발레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포르 드 브라는 단순히 팔을 드는 동작이 아니라, 팔의 움직임이 어떤 흐름으로 시작해서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다루는 기술입니다. 팔의 선과 호흡이 퍼포먼스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발레 교육에서는 기초 단계부터 포르 드 브라의 질적 완성도를 핵심 기준으로 삼습니다.

 

Q. 아다지오가 빠른 테크닉보다 어렵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적어도 제 경험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빠른 동작은 순간에 지나가서 작은 흔들림이 묻히는 경우가 있지만, 아다지오는 한 자세가 몇 초씩 그대로 노출됩니다. 중심의 흔들림이나 팔의 호흡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숙련된 무용수일수록 아다지오를 더 어렵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Q. 이솝 우화 《공작과 두루미》의 교훈이 단순히 "내면이 중요하다"는 건가요?

A. 그렇게만 읽기엔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공작의 화려함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고, 두루미가 공작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핵심은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두 새는 단순히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론

《공작과 두루미》는 저에게 '튀지 않아도 묵직하게 남는 선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몸으로 이해하게 해준 작품입니다. 이 작품 전까지는 무대에서 눈에 띄는 것이 곧 잘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두루미를 연기하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좋은 무용수는 가장 화려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임이 끝난 뒤에도 관객의 기억 속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장식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선과 호흡에서 나온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이 작품이 가르쳐줬습니다. 《공작과 두루미》를 공연하거나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화려한 공작만큼 두루미의 조용한 선에도 눈을 두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고: https://classics.mit.edu/Aesop/fab.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