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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대에서 주인공을 맡으면 당연히 기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처음으로 주인공 역할을 받아 든 날, 저는 설레기보다 겁이 더 많이 났습니다. 창작발레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 역할이 제게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익숙한 우화가 발레 무대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달라지는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는 이솝 우화 중에서도 가장 오래, 가장 넓게 읽혀온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여름 내내 먹이를 모으는 개미와 노래하며 노는 베짱이가 대비되고, 겨울이 오면서 두 삶의 태도가 결과로 나타납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이솝 컬렉션).
어릴 때는 이 이야기를 단순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개미는 착하고 베짱이는 나쁘다. 성실해야 한다. 딱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발레단에서 직접 베짱이를 연기하게 되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베짱이는 게으름의 상징으로 읽히는데, 제 경험상 이 캐릭터는 훨씬 입체적입니다. 베짱이에게는 음악을 즐기고 현재를 충분히 살아가는 감각이 있습니다. 물론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태도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일만 하느라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모두 포기하는 삶이 반드시 이상적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함과 즐거움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을 것인가, 이 우화는 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베짱이 역할을 받고 기쁘지 않았던 이유
주인공을 맡으면 당연히 뛸 듯이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베짱이 역할을 받아 든 순간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설렘이 아니라 불안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발레단에 들어갔을 때부터 저는 늘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감각을 안고 있었습니다. 무용을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뛰어난 선배들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무대를 채우는 것이 오히려 익숙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무대의 중심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컸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연습실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습관이 되어 무대에서 그대로 나온다. 무대는 엑스레이와 같다." 처음에는 선생님이시니까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는데, 공연 영상을 직접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이 보였습니다. 연습 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시선 처리, 손끝의 작은 버릇, 정리하지 못한 동작까지 고스란히 화면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이 다시 떠오르는 동시에, 이제 그것이 제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자리의 책임이라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렘보다 근심을 한가득 안고 연습실로 향했습니다.

A Fifth of Beethoven과 함께한 유쾌한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는 창작발레로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서 창작발레란, 《백조의 호수》처럼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고전발레와 달리 안무가가 음악·동작·캐릭터를 새롭게 구성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고정된 안무가 없는 만큼 안무가의 해석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 작품에 쓰인 음악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Walter Murphy의 〈A Fifth of Beethoven〉이 베짱이의 테마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곡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흔히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곡의 도입부 선율을 가져와 디스코 리듬과 결합한 것입니다. 여기서 '운명 교향곡'이란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중 "따따따 딴"으로 시작하는 강렬한 도입부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으로, 서양 클래식 음악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입니다.
원곡이 가진 무게감과 디스코 특유의 경쾌한 리듬이 만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유쾌함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이 음악에 맞춰 무대에 서봤는데, 음악 자체가 관객과 무용수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베짱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는 군무(群舞)와의 대비도 중요했습니다. 군무란 여러 명의 무용수가 함께 추는 춤을 말하는데, 이 작품에서 개미들의 군무는 일정한 방향과 박자에 맞춰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질서와 부지런함을 표현했습니다. 반면 제가 맡은 베짱이는 그 정돈된 흐름과 정반대였습니다. 클래식 발레의 기본 발동작을 유지하면서 상체는 훨씬 자유롭게 놀았고, 솔로 중간에는 발레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문워크까지 들어갔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동작이 나오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저 역시 그 반응이 힘이 되었습니다.
- 음악: Walter Murphy 〈A Fifth of 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선율 + 디스코 리듬 결합
- 개미 군무: 정확한 간격·동선 유지, 반복적 움직임으로 조직성 표현
- 베짱이 솔로: 클래식 발레 발동작 기반 + 자유로운 상체 움직임 + 문워크 삽입
힘들어도 힘든 척 못 하는 무대, 그리고 처음 발견한 나만의 색깔
겉으로 보이는 유쾌함과 달리 체력적으로 이 작품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등장 첫 순간부터 시손 페르메(sissonne fermée)와 글리사드(glissade)가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손 페르메란 양발로 점프했다가 한 발로 닫으며 착지하는 동작으로, 다리에 순간적으로 큰 부하가 걸립니다. 글리사드는 한 발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이동하는 이음새 동작인데, 이 두 가지가 시작부터 연속으로 나오니 다리가 빠르게 달아올랐습니다.
더 어려웠던 건 하체와 상체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체는 에샤페(échappé)와 파세(passé) 같은 발레 동작을 정확하게 이어가야 했습니다. 에샤페란 두 발을 모았다가 벌리며 포지션을 바꾸는 동작이고, 파세는 한 발을 반대쪽 무릎 옆에 붙이는 자세로 발레에서 균형과 제어력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포지션입니다. 이 동작들이 스몰 점프, 그랑 점프와 함께 이어지면서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빠르게 소진됐습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지쳐 보이면 안 됐습니다. 다리가 무거워져도 얼굴에서는 여전히 음악에 흠뻑 취한 베짱이의 표정이 나와야 했습니다. 제가 직접 무대를 뛰어보니, 관객의 반응이 그 힘을 만들어준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들리는 순간 다시 힘이 생겼고, 결국 그 에너지로 마지막 장면까지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마치고 나서 한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이라는 자리는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까지 책임지고 작품을 끝까지 이끌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발레에서는 기본기가 뛰어난 무용수가 좋은 무용수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기본기만으로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정확한 동작 위에 자신만의 색깔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얹히느냐가 창작발레에서는 훨씬 결정적이었습니다. 늘 잘하는 사람과 저를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만 봐왔는데,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이솝 컬렉션).
자주 묻는 질문
Q. 개미와 베짱이 발레는 어떤 장르인가요?
A. 《백조의 호수》처럼 전통 안무가 정해진 고전발레가 아니라, 안무가가 음악과 동작을 새롭게 구성하는 창작발레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공연마다 안무와 구성이 다를 수 있고, 클래식 발레 동작과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혼합하는 방식이 많습니다. 제가 경험한 작품도 이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섞인 구성이었습니다.
Q. A Fifth of Beethoven이 발레 음악으로 어울리나요?
A. 일반적으로 발레는 클래식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Walter Murphy의 〈A Fifth of Beethoven〉처럼 경쾌한 리듬의 곡도 캐릭터에 따라 충분히 잘 맞았습니다. 베토벤 원곡의 선율이 바탕에 있어 귀에 익숙하고, 디스코 리듬이 더해지면서 발레 무대에서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오히려 관객과의 거리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Q. 창작발레와 고전발레의 차이가 뭔가요?
A. 고전발레는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수십 년에 걸쳐 전승된 안무가 있고, 세계 어디서 공연해도 기본 구성이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반면 창작발레는 안무가가 음악, 동작, 스토리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도가 훨씬 높습니다. 발레 기본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장르나 음악의 제약이 적어, 저는 창작발레에서 오히려 제 색깔을 더 자유롭게 낼 수 있었습니다.
Q. 발레에서 주인공과 군무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가요?
A. 군무는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며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를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개인의 실수가 전체 대형 속에 어느 정도 섞입니다. 반면 주인공은 무대 위에서 홀로 시선을 받는 시간이 길고, 표정·시선·손끝까지 모든 것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제가 직접 두 자리를 모두 경험해보니, 주인공은 특권보다 책임에 훨씬 가까운 자리였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개미와 베짱이》는 저에게 단순히 유쾌했던 공연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뒤에 서는 것이 익숙했던 제가 처음으로 무대의 중심에 서서 '나의 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발레에서 탄탄한 기본기는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기 위에 자신만의 색깔을 얼마나 정교하게 쌓아 올리느냐가 결국 무용수를 구별한다고,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느꼈습니다.
창작발레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가까운 발레단의 창작 공연 일정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고전발레와 달리 예비 지식 없이도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의외의 음악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발레 언어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loc.gov/static/collections/childrens-book-selections/articles-and-essays/aesop/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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