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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마녀 역 공연 당시 모습 | 사진: 개인 소장

 
 
 

발레에서 마녀 역할은 화려한 점프보다 팔 하나를 뻗는 마임 동작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제가 직접 《백설공주》의 왕비이자 마녀를 맡아 무대에 서봤을 때 이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동화가 발레로 재탄생할 때 관객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몸 전체로 빚어내는 감정의 밀도였습니다.



마녀를 완성한 건 벨벳 드레스와 마임이었습니다

우리 발레단이 《백설공주》를 새 레퍼토리로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작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어린 시절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그림책으로 수도 없이 만났던 이야기가 직접 서는 무대의 작품이 된다는 게 그냥 좋았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은 왕비이자 마녀였습니다. 의상을 처음 받아 든 순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검붉은 색과 짙은 보라색이 층을 이루는 고풍스러운 벨벳 드레스였는데, 입는 순간 제가 정말 동화 속 마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퍼플 계열이 잘 받는 편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고, 솔직히 그 공연에서 제가 보여준 마녀의 위압감 중 70% 이상은 의상이 먼저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의상이 무용수에게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캐릭터에 맞는 의상을 입으면 몰입이 훨씬 빠르게 일어나고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도 달라집니다. 다만 의상은 시각적 아름다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도 이 공연을 통해 배웠습니다. 2016년 여름, 전북 고창문화회관 지원사업 공연 날 에어컨이 고장 났습니다. 폭염 속 리허설에서 두툼한 벨벳 드레스를 입고 큰 동작의 마임을 반복했을 때,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의상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워졌습니다. 공연 환경과 무용수의 체력까지 고려되어야 비로소 완성된 의상이라는 생각이 그날 생겼습니다.

《백설공주》처럼 줄거리가 분명한 이야기 발레, 즉 내러티브 발레(Narrative Ballet)에서는 의상 못지않게 마임(mime)의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마임이란 대사 없이 몸의 움직임과 표정만으로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신체 언어 기법을 말합니다. 왕비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백설공주를 향한 질투를 드러내며, 독사과를 건네는 장면은 모두 마임으로만 진행됩니다. 이때 관객은 대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무용수의 시선 방향, 손끝의 긴장감, 걷는 속도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체의 신뢰도를 결정합니다.

  • 시선 처리: 왕비가 어디를 보느냐만으로도 감정의 대상이 바뀐다
  • 손끝의 에너지: 팔을 뻗는 단순 동작도 손끝까지 힘이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흐려진다
  • 걸음의 무게감: 마녀가 무대를 가로지르는 속도와 발의 압력이 캐릭터의 위압감을 만든다
  • 표정의 절제: 과하게 찡그리는 것보다 눈빛 하나를 정확히 쏘는 것이 훨씬 무섭다

제가 직접 해봤을 때 가장 놀랐던 건 마임이 발레 테크닉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무대에서 아라베스크(arabesque, 한 다리로 서서 반대쪽 다리를 뒤로 길게 뻗는 발레의 기본 포즈)나 피루엣(pirouette, 한 발을 축으로 빠르게 제자리 회전하는 동작)은 정해진 규칙대로 몸을 움직이면 됩니다. 하지만 마임은 단 한 번의 팔짓에도 분노인지 질투인지 음흉함인지를 담아야 하고, 그 감정이 손끝까지 선명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쉬어 보이는 동작에 온몸의 집중력을 쏟는 경험, 그게 마녀 역할이었습니다.

요약: 이야기 발레에서 마녀 캐릭터를 완성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마임과 의상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정의 밀도입니다.

《백설공주》 마녀 역 공연 당시 모습 ❘ 사진: 개인 소장

동화발레를 더 잘 즐기려면 캐릭터 대비를 보세요

《백설공주》가 발레 무대에서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두 주인공의 성격 차이가 춤으로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백설공주는 부드럽고 유려한 리리컬(lyrical) 무브먼트로 표현됩니다. 리리컬 무브먼트란 음악의 선율을 따라 흐르듯 이어지는 움직임을 뜻하며, 순수하고 밝은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에 적합합니다. 반면 왕비의 동선은 각이 지고 절제되어 있으며, 공간을 압도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제가 왕비를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백설공주와의 대비였습니다. 같은 무대, 같은 음악 안에서 두 사람의 에너지가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느냐가 극의 긴장감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백설공주 역의 단원이 팔을 둥글고 부드럽게 가져갈 때, 저는 손끝을 날카롭게 세우고 시선을 차갑게 유지했습니다. 이 대비가 관객에게 전달될 때 대사 없이도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이 느껴지게 됩니다.

같은 《백설공주》를 주제로 하더라도 발레단마다 안무 구성이 달라집니다. 일본국립극장(新国立劇場, New National Theatre Tokyo)처럼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올리는 프로덕션은 출처: New National Theatre Tokyo처럼 음악 선택부터 등장인물 구성까지 독자적인 해석을 담아냅니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가 발레라는 언어로 번역될 때 안무가의 해석이 개입되기 때문에, 같은 장면도 작품마다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창작발레(Creative Ballet), 즉 기존의 고전 발레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와 안무로 구성하는 발레 장르는 동화를 소재로 삼을 때 특히 자유도가 높습니다. 대본과 음악, 의상까지 새롭게 만들 수 있어서 발레단의 개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저희 발레단의 《백설공주》도 의상 하나부터 안무의 결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버전이었습니다. 그게 창작발레가 가진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화발레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종종 "줄거리를 알고 보면 더 재미없지 않나요?"라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제 경험상 이건 완전히 반대입니다. 줄거리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무용수가 그 장면을 어떻게 몸으로 풀어내는지를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습니다. 왕비가 독사과를 건네는 장면에서 어떤 마임을 쓰는지, 일곱 난쟁이는 집단 군무(corps de ballet, 코르드발레)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이런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발레는 완전히 다른 예술로 보입니다. 참고로 발레의 역사와 교육적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아카이브는 출처: New National Theatre Tokyo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요약: 동화발레는 줄거리를 알수록 무용수의 마임과 캐릭터 대비를 더 깊이 읽을 수 있어 관람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발레 《백설공주》는 어린이도 볼 수 있나요?

A. 동화 발레는 줄거리가 친숙하고 의상과 무대 시각 효과가 풍부해서 어린이 관객에게도 잘 맞습니다. 대사가 없어도 마임과 음악만으로 이야기가 전달되기 때문에, 공연 전에 그림책으로 줄거리를 한 번 읽어주면 훨씬 집중해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무대에 서봤을 때도 어린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습니다.

 

Q. 발레에서 마임이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봐야 하나요?

A. 마임은 무용수가 대사 없이 몸짓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신체 언어입니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인물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손짓이 부드러운지 날카로운지만 보셔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마임 장면에서 무용수의 눈을 따라가면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Q. 창작발레와 고전발레는 어떻게 다른가요?

A. 고전발레는 《백조의 호수》나 《지젤》처럼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작품을 정해진 형식과 안무로 올리는 것이고, 창작발레는 새로운 이야기와 안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발레입니다. 창작발레는 발레단마다 같은 소재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같은 《백설공주》라도 어느 발레단의 작품을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Q. 발레 의상이 무용수 연기에 영향을 미치나요?

A.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줍니다. 제가 왕비 의상을 입었을 때 캐릭터 몰입 속도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반면 여름 폭염 속에서 두꺼운 벨벳 의상을 입고 공연했을 때는 체력 소모가 배가 되는 경험도 했습니다. 의상은 시각적 완성도뿐 아니라 무용수의 움직임 범위와 체력 부담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백설공주》 발레 공연을 마치고 나서 저에게 남은 건 화려한 무대의 잔상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임 한 동작에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감각, 폭염 속 고창문화회관에서 벨벳 드레스를 입고 끝까지 버텼던 기억, 그리고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건 테크닉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발레를 관람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무용수의 다리나 회전보다 눈빛과 손끝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거기서부터 발레가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야기 발레라면 줄거리를 미리 알고 들어가는 것이 훨씬 풍부한 관람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참고: https://www.nntt.jac.go.jp/english/productions/detail_0096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