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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창작발레 《콩쥐팥쥐》 공연 당시 모습   출처: 개인 소장 사진

 

솔직히 저는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발레로 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발레단에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콩쥐팥쥐》를 처음 기획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단원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는데, 막상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클래식 발레가 얼마나 넓은 언어인지를 다시 배웠습니다. 팥쥐 엄마 역할을 직접 맡아 연기하며 느낀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전래동화가 발레 무대에 오르기까지

제가 학창 시절 접했던 발레 레퍼토리는 대부분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처럼 서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요즘이야 《심청》이나 《춘향》 같은 한국 소재 발레를 접할 기회가 생겼지만, 그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창작발레(創作 Ballet)란, 기존 클래식 레퍼토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와 안무를 처음부터 구성한 작품을 말합니다. 여기서 '창작'이란 단순히 이야기가 새롭다는 뜻이 아니라, 음악 선택부터 안무 언어, 의상 디자인까지 모든 요소를 해당 작품을 위해 독자적으로 설계한다는 의미입니다. 클래식 발레의 정형화된 레퍼토리와 달리, 창작발레는 소재의 선택 폭이 훨씬 넓습니다.

《콩쥐팥쥐》는 착한 콩쥐와 그를 괴롭히는 계모·팥쥐의 갈등 구조가 뚜렷하고, 등장인물의 성격 차이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발레 무대에 잘 어울리는 소재였습니다. 대사 없이 춤과 표정, 몸짓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발레에서 인물의 성격이 분명할수록 관객이 내용을 이해하기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콩쥐팥쥐 이야기는 착한 인물이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는다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는 발레에서 주인공과 악역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하기에 좋은 조건입니다.

요약: 창작발레는 이야기부터 안무까지 모두 새롭게 설계하는 작품으로, 인물 대비가 뚜렷한 《콩쥐팥쥐》는 그 소재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진 설명: 창작발레 《콩쥐팥쥐》 공연 당시 모습 / 출처: 개인 소장 사진

 

클래식 발레 위에 한국적인 선을 얹는 일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어렵게 느꼈던 부분은 기술적인 동작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발레에서 팔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포르 드 브라(Port de bras)는 오랜 시간 반복 훈련을 통해 체득하는 동작 언어입니다. 쉽게 말해 팔의 위치, 각도, 이동 경로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인데, 오래 배울수록 그 패턴이 몸에 깊이 새겨집니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익숙한 포르 드 브라에서 벗어나 한국 전통 춤의 호흡과 곡선적인 팔 선을 표현하려니, 습관이 먼저 나왔습니다.

클래식 발레는 턴아웃(Turn-out), 즉 양발을 바깥쪽으로 회전시켜 서는 자세를 기본으로 하며 팔과 다리를 길게 뻗는 직선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합니다. 반면 우리 전통춤에서는 호흡을 머금고 내뿜는 리듬 위에 팔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단순히 혼합한다고 해서 자연스러워지지는 않습니다. 장면과 인물에 따라 어느 언어를 더 앞세울지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의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복의 저고리 소매 라인을 무겁게 재현하는 대신, 스팽글 장식이 달린 가느다란 끈으로 한복의 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입어보니 발레 동작을 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무대 위에서 한복의 고운 선이 살아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의상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반대로 확장시키는 데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요약: 포르 드 브라의 습관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곡선을 표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 과제였으며, 의상 역시 발레 동작과 한복의 선을 동시에 살리도록 재설계되었습니다.

 

마임, 발레에서 말 대신 이야기하는 방법

팥쥐 엄마를 맡았을 때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연기가 너무 약하다"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정확한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무용수의 역할이라고 거의 당연하게 여겼는데, 《콩쥐팥쥐》는 그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별도로 연기 연습을 따로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발레에서 마임(Mime)은 대사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연기 기법입니다. 단순히 과장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흐름과 정확하게 호흡을 맞추면서 손끝, 시선, 체중 이동까지 계산된 방식으로 조절하는 기술입니다. 특히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 발레(Narrative Ballet)에서는 화려한 테크닉보다 마임의 완성도가 관객의 이해도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코믹한 악역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비장한 역할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과장이 너무 크면 촌스러워지고, 부족하면 관객에게 의도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특히 콩쥐를 괴롭히는 장면에서 팥쥐에게 꿀밤을 먹이는 동작이 있었는데, 음악 속 북소리 '쿵, 쿵쿵'에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야 했습니다. 그 몇 초짜리 장면을 위해 해당 구간 음악만 100번은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연에서 드디어 정확하게 맞춰냈을 때의 쾌감은 솔직히 기술적으로 어려운 동작을 성공했을 때와 전혀 다른 종류의 기쁨이었습니다.

  • 마임은 음악의 박자와 정밀하게 맞물려야 하는 정교한 표현 기술입니다.
  • 악역 캐릭터의 경우 과장과 절제 사이의 균형이 연기의 핵심입니다.
  • 내러티브 발레에서 마임의 완성도는 관객이 대사 없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요약: 발레 마임은 음악과 타이밍, 표정과 시선을 함께 조율해야 하는 정밀한 기술이며, 내러티브 발레에서는 테크닉만큼 중요한 표현 수단입니다.

 

한국 창작발레가 나아갈 방향

《콩쥐팥쥐》를 경험하고 나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발레가 반드시 서양의 이야기와 정형화된 미학만을 담아야 하는 예술 형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클래식 발레의 테크닉은 어디까지나 표현의 도구이고, 무엇을 담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이 작품이 몸으로 가르쳐줬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국립발레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우리 서사를 담은 창작발레 레퍼토리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발레단). 《심청》, 《춘향》 같은 작품들이 이미 국내외에서 공연되고 있고, 해외 관객에게도 한국의 정서를 발레라는 형식으로 전달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한류가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지금, 발레 역시 우리 고유의 전래동화와 전통적인 움직임을 접목한 창작 작품들이 더 다양하게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본 결과 그 과정을 통해 표현의 폭이 한층 넓어지고, 기존 클래식 발레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한국 발레만이 낼 수 있는 색깔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클래식 발레 테크닉은 표현의 도구이며, 한국의 전래동화와 전통적 움직임이 결합된 창작발레는 한국 발레만의 독자적인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창작발레와 클래식 발레는 어떻게 다른가요?

A. 클래식 발레는 《백조의 호수》처럼 수백 년간 전승된 정형화된 레퍼토리를 가리키고, 창작발레는 이야기와 안무, 음악을 처음부터 새롭게 구성한 작품을 말합니다. 창작발레는 소재 선택이 자유롭기 때문에 한국 전래동화처럼 기존 클래식에 없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습니다. 표현 방식도 작품마다 다르게 설계됩니다.

 

Q. 발레에서 마임이 왜 중요한가요?

A. 발레에는 대사가 없기 때문에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마임입니다. 특히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 발레에서는 마임의 완성도가 관객의 이해도를 직접적으로 결정짓습니다. 단순한 과장된 표정이 아니라 음악의 흐름과 정밀하게 맞물리는 정교한 표현 기술입니다.

 

Q. 한복을 입고 발레 동작을 하는 게 가능한가요?

A. 전통 한복을 그대로 입으면 발레의 큰 동작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생깁니다. 그래서 창작발레 무대에서는 한복의 색감과 선을 살리면서 무용수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무대의상으로 재구성합니다. 《콩쥐팥쥐》의 경우 저고리 소매 라인을 스팽글 장식 끈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해, 움직임의 제약 없이 한복의 선을 무대 위에서 살렸습니다.

 

Q. 발레로 전래동화를 표현하면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나요?

A.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는 이야기를 발레로 표현하면 대사가 없어도 관객이 내용을 따라가기 훨씬 수월합니다. 특히 콩쥐팥쥐처럼 인물의 성격 대비가 뚜렷한 이야기는 움직임만으로도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악역인지 바로 전달됩니다. 어린 관객일수록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로운 형식으로 만나는 경험 자체가 흥미로운 자극이 됩니다.

 

결론

《콩쥐팥쥐》는 제게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품이라기보다,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 작품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포르 드 브라의 습관을 버리고, 정확한 동작 수행을 넘어 캐릭터의 감정을 몸 전체로 전달하는 연기를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팥쥐 엄마로서 북소리에 꿀밤 타이밍을 맞추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클래식 발레와 한국의 전래동화가 만났을 때 이전에 없던 색다른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용수로서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앞으로 한국 창작발레 레퍼토리가 더 다양하게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창작발레 공연을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대사 없이 춤으로 펼쳐지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합니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콩쥐팥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