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전공하고 무대에서 발끝으로 서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는데도, 폴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는 순간 제가 알던 균형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같은 몸, 같은 발끝인데 방향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낯설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통해 균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이야기입니다.발레 경험이 있어도 거꾸로 자세 앞에선 처음부터 다시저도 처음엔 폴에서도 발레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오랜 시간 다져온 균형 감각이 있었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에서만큼은 꽤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폴에 매달려 몸을 거꾸로 뒤집는 순간, 그 자신감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바로 느꼈습니다.균형은 근력 하나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
한동안 몸을 못 움직이다가 다시 발레를 하러 갔던 날, 솔직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예전만큼 안 된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봐요.그런데 막상 바닥에 누워 다리를 쭉 뻗으니, 몸이 생각보다 편안하게 풀렸습니다.오랜만에 발레로 돌아갈 때 웜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날 신촌 탄츠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스트레칭, 몸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 발레 수업 전 웜업(warm-up)을 단순히 유연성을 끌어올리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 경험상 그것만은 아닙니다.웜업이란 심부 체온을 서서히 높이고 관절의 가동 범위를 안전한 수준으로 깨우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잠자고 있던근육과 관절에게 "오늘 움직일 거야"라고 알려주는 신호 같은 것이죠.신촌 탄츠에서 수업이 시작되기 전, 저는 매트에 누워 한쪽 ..
무용을 오래 하다 보면 몸을 움직이는 장소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거울이 있고, 평평한 바닥이 있고, 일정한 조명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는 거울을 통해 자세를 확인하고 바닥을 밀어내며 자연스럽게 내 몸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태국을 여행하면서 전혀 다른 공간에서 몸을 움직여보니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바닥이 모래가 되기도 하고, 고정된 바나 폴 대신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기도 했으며, 거울 대신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장소가 달라지자 같은 몸인데도 움직임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1. 나뭇가지에 몸을 맡기자 움직임이 달라졌다태국 홍아일랜드의 바닷가였습니다. 모래사장 뒤편에는 나뭇가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 있었는데, 당시 저는 한창 폴댄스를 배우..
거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연습 의욕이 뚝 떨어졌던 날이 있었습니다. 바 앞에 사람이 꽉 차서 제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으면, 솔직히 그날 연습은 반쪽짜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답답함이야말로 제가 거울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무용수에게 거울은 분명 필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거울을 많이 본다는 것이 자신의 몸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거울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이유연습실에서 바 워크를 할 때, 앞줄에 사람이 많으면 거울에 제 모습이 제대로 안 보이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바 동작을빨리 끝내고 센터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심지어 동작을 대충 넘긴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거울..
커다란 탈을 뒤집어쓰고 무대에 올랐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명이 켜지는 순간 탈 안쪽 플라스틱에 김이 서려눈앞이 완전히 하얘졌거든요. 이 작품은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몸에서 시작해 안으로 응축되고, 마침내 거대한 날개를 펼치는 존재의 세 단계 성장을 발레로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올랐던 무대 중 가장 낯설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미완성의 몸 —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잘 보였습니다발레를 오래 하면 무의식적으로 몸을 곧게 세우고, 동작의 선을 정돈하려는 습관이 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의 첫 번째 단계는 정반대를 요구했습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탈을 뒤집어쓴 채,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이 움직이는 어린 존재를 표현해야 했거..
6개월 동안 폴댄스를 배워 공중에서 학이 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제8전시실, 탄성 하나 없는 시멘트 바닥 위에서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춰야 했던 무대 이야기입니다. 《DMZ 극장》은 저에게 단순히 색다른 공연이 아니라, 예술의 경계와 제 몸이 가진 움직임의 경계를 동시에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다원예술로 재구성된 DMZ의 공간《DMZ 극장》은 정연두 작가와 연출가 수르야가 함께 만든 다원예술(interdisciplinary art)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다원예술이란 시각예술, 공연, 음악, 무용 등 둘 이상의 장르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조용히 감상하는 방식도 아니고, 극장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방식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놓인..
